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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詩

이문재, 햇볕에 드러나면 슬픈 것들

by leitz 2017. 2. 23.




햇볕에 드러나면 슬픈 것들


이문재


햇볕에 드러나면 짜안해지는 것들이 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 쌀밥에 햇살이 닿으면 왠지 슬퍼진다

실내에 있어야 할 것들이 나와서 그렇다

트럭 실려 가는 이삿짐을 보면 그 가족사가 다 보여 민망하다

그 이삿짐에 경대라도 실려 있고, 거기에 맑은 하늘이라도 비칠라치면

세상이 죄다 언짢아 보인다 다 상스러워 보인다


20대 초반 어느 해 2월의 일기를 햇빛 속에서 읽어보라

나는 누구에게 속은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진다

나는 평생을 2월 아니면 11월에만 살았던 것 같아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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