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노운 걸(Unknown Girl, 2016)
감독: 장 피에르 & 뤽 다르덴, 주연: 아델 아에넬, 2016
무겁고 어두운 영화를 좋아하지 않지만, 내내 침울한 이 영화를 끝까지 보게 됐다.
1. 훌륭한 의사란.
훌륭한 의사는 감정도 통제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하지만 내내 무표정, 아니 어두운 표정의 주인공 다뱅. 그러나 그녀는 모든 상황에서 감정을 통제할 수는 없음을, 아니 그래서는 안 되는 일도 있음을 영화 내내 보여주고 있다.
프랑스의 의사는 참 힘들구나.(한국 의사도 힘들겠지만 조금 다른 맥락에서) 주치의 시스템이 갖추어지면 좋은 점이 참 많겠다 싶다. 의사는 힘들겠지만. 함께 일하던 인턴 줄리앙이 병원에서 발작으로 쓰러진 아이를 보고는 의사의 길을 단념하는데..
다뱅은 전도 유망한 의사였다. 잠깐 맡고 있던 동네 클리닉에서 경력에 큰 도움이 되는 자리로 이직할 기회가 찾아온 것. 더 이상 주치의를 맡을 수 없을 것 같아 그걸 아쉬워하는 환자로부터 깜짝 작별 선물도 받고.
다뱅이 줄리앙의 고향을 찾아가 의사를 그만두고 나무 자르는 일을 돕는 그를 만난 건 왜였을까. 의사가 좋은 직업이라서 그걸 포기하지 말라고?
근무 시간이 지난 뒤 울린 낯선 벨소리를 한 번 무시한 대가가 그녀에게는 너무나 컸다. 소녀가 죽고 죄책감에 시달리고.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대화는 이것이다. 소녀를 죽음으로 내몬 남자가 '죽으면 다 끝'이라 말하자 다뱅이 한 말. "끝난 게 아니니까 우리가 이렇게 괴롭겠죠."
죽으면 다 끝인가? 죽은 사람 입장에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살아있는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진짜 죽음이란 망각일지도 모른다. 완전히 잊혀짐. 허나 이따금 그를 환기한다면 내내 그는 살아있는 것이리라. 그래서 공자도 인한 자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래 산다 한 것 아닐까.
다뱅이 줄리앙을 포기하지 않고 독려한 이유는, 그가 훌륭한 의사가 될 수 있으리라 용기를 북돋은 이유는, 줄리앙이 조금 더 보람된 삶을 살기를 바라서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