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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詩

이문재, 개똥벌레

by leitz 2015. 6. 6.


개똥벌레

_이문재

 

뭉클, 솟아나는 저 여름 산

진초록, 원근은 편안하고 자욱하다

너는 한낮의 가로등처럼 없는 듯

있었는데, 기실 저녁도 알고 보면 동쪽에서

오는 것이었는데, 그림자 자작자작 밟으며

동쪽에서 오는 거였는데, 꿈뻑

 

어미 소처럼 가로등 불 들어오고

3번 국도 휴게소에서 저물 녘 발간

가로등을 마주친다, 울컥

저녁은 옛일을 데불고 와서 마악

생겨나는 어둠을 좌악 펼친다

쉼표처럼 반딧불이 켜진다

가로등에서 너는 반딧불로 몸 바꿔

내 잘못에 따끔따끔 침을 놓고 있구나

 

원근이 사라지면 불안하다

저녁은 동쪽에서 오는 것, 옛일도

옛날에서 오는 게 아니었다, 이렇게 

도처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가로등 불 자꾸만 밝아진다

 

(산책시편,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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