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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리뷰

황정은, 계속해보겠습니다, 창비, 2014.

by leitz 2017. 10. 24.


무겁게 흐르는 강물 위에서

가볍고 무심한 듯한 몸짓으로

무거운 이야기를 낚시질하는 느낌의 소설. 


<지금 황정은을 읽지 않는다면 당신은

처연하게 아름다운 세계를 놓치고 있는 것이라> 라는 홍보 문구에는 동의할 수 없는 소설. 


뭐 취향의 문제일 수 있으니. 

내가 생각하는 좋은 소설은 잘 읽히고, 그럼에도 문장은 정제되어 있고, 인생의 무거움과 아름다움을 살풋살풋 건드리는 그런 소설이다. 

이 소설은 우선 잘 읽힌다. 책을 천천히 읽는 내가 거의 하루 만에 다 읽었으니. 술술 읽힌다. 그러나 뭔가 이야기의 본질까지 다다르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자꾸 들고 피상적이라는 느낌도 지울 수 없었다. 

나름 독특했던 점은, 소라-나나-나기-나나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주인공들의 시점에서 서술되면서도 시간이 거의 직선적으로 흐르도록 구성한 점이었다. 그러니까 한 주인공이 겪은 이야기를 다른 주인공의 시점에서 다시 되풀이하지 않고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는 서술, 이건 신선하고 좋았다. 

또 애자가 요양원에서 들려준 이야기도 좋았다. 사랑을 위해 죽는 여자의 이야기. 


있지.

라고 애자는 말했다.

최근에 아래층에 들어온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해줬어.

부부가 있었대.

어릴 적에 자기가 살던 마을에 금실이 좋은 젊은 부부가 있었대.

좋아도 너무 좋아서 귀신에게 시기를 받은 거지.

장맛비가 내리던 날 내를 건너 집으로 돌아오던 남편이 물에 휩쓸렸대.

마을 사람들이 하류에서 뱅글뱅글 돌고 있는 우산을 발견했대.

부인은 믿지 않았대.

어딘가에 남편이 살아 있다고 믿고 여름과 가을 내내 내를 따라 오르내리며 남편을 불렀대.

마을 사람들이 딱하게 여겨 그 집에 찾아가 아궁이에 불을 지펴주었대.

하루는 부엌 문간에 앉아서 아궁이 쪽을 바라보던 여자가 모처럼 웃더래.

불을 피우던 사람이 잠시 자리를 비웠다가 돌아오고 보니 여자가 아궁이 속에 들어가 있더래.

빨간 불 속에서 여자의 표정이며 피부가 그토록 아름답더래.

아름답더래.

나는 그렇게 못해서, 아름답지 못한 것이 되고 말았어.

(84-85면)


기괴하면서도 아름다운 이야기. 모든 걸 내거는 그런 사랑을 애자는 희구했다. 그러나 그 딸 나나는 달랐다.


사랑에 관해서라면 그 정도의 감정이 적당하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이윽고 괜찮아지는 정도. 헤어지더라도 배신을 당하더라도 어느 한쪽이 불시에 사라지더라도 이윽고 괜찮아,라고 할 수 있는 정도. 그 정도가 좋습니다. 아기가 생기더라도 아기에게든 모세씨에게든 사랑의 정도는 그 정도,라고 결심해두었습니다.

애자와 같은 형태의 전심전력, 그것을 나나는 경계하고 있습니다.

(104면)


과연 나나는 그런 것 같았다. 적당한 사랑. 그게 가능키나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대개는 그건 노력으로 안 되는 것인데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하면 가능한지도 모르겠다) 나나는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모세씨를 대하는 태도를 보아도 그렇고, 애자가 자신에게 대해온 태도를 보건대 나나도 자식에게 그리할 수 있을 것도 같다. 

가장 납득하기 어려웠던 것은 나기 부분이다. 그의 동생애가 상당히 뜬금없었기 때문이다. 어떤 심정으로 '그'를 사랑했는지 그에 대한 감정이 구체적으로 어떠했는지에 대한 설명 부족 때문이 아닐까 싶다. 동성애가 나쁠 리는 없지만 나기의 사랑은 참 난데없기만 해서 납득이 되지 않았다.

황정은 작가에 대한 찬사를 주위에서 많이 들었다. 그래서 전부터 읽어보아야지, 생각했다. 이게 요즘 트렌드인가 싶기도 하지만, 고개가 끄덕여지는 소설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