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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詩

안도현, 양철 지붕에 대하여

by leitz 2015. 6. 23.

 

 

 

 



양철 지붕에 대하여


                          -안도현

 


양철 지붕이 그렁거린다, 라고 쓰면

그럼 바람이 불어서겠지, 라고

그저 단순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삶이란,

버선처럼 뒤집어볼수록 실밥이 많은 것


나는 수없이 양철 지붕을 두드리는 빗방울이었으나

실은, 두드렸으나 스며들지 못하고 사라진

빗소리였으나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 절실한 사랑이 나에게도 있었다


양철 지붕을 이해하려면

오래 빗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한다

맨 처음 양철 지붕을 얹을 때

날아가지 않으려고

몸에 가장 많이 못자국을 두른 양철이

그놈이 가장 많이 상처입고 가장 많이 녹슬어 그렁거린다는 것을

너는 눈치채야 한다


그러니까 사랑한다는 말은 증발하기 쉬우므로

쉽게 꺼내지 말 것

너를 위해 나도 녹슬어가고 싶다, 라든지

비 온 뒤에 햇볕 쪽으로 먼저 몸을 말리려고 뒤척이지는 않겠다, 라든지

그래, 우리 사이에는 은유가 좀 필요한 것 아니냐?


생각해봐

한쪽 면이 뜨거워지면

그 뒷면도 함께 뜨거워지는 게 양철 지붕이란다


(바닷가 우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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