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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리뷰

천양희, 『나는 울지 않는 바람이다』, 문예중앙, 2014.

by leitz 2017. 10. 28.

 

천양희 시인의 산문집. 시인의 시집을 여러 권 읽은 터라 이 산문집을 접하면서 '이건 어디서 많은 본 내용인데'하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시인 당신의 시에 얽힌 이야기들을 풀어 놓은 대목이 많아서다.

시인은 바람을 유달리 좋아하여, 그리하여 제목도 이렇다. 바람을 좋아하는 시인은, 고독과 시련을 자양분 삼아 운명처럼 시를 기다린다. 스스로를 단련하고 스스로를 (가끔) 다독이는 것이 시인의 삶을 사는 방식이고 그녀의 시에서도 그런 어떤 '비장함'이랄까 그런 것이 느껴지곤 한다.

지금도 나는 원고지 앞에 앉으면 사각형의 모서리가 절벽처럼 느껴진다. 그 순간은 말할 수 없이 절박한 순간이 된다. 쓰는 순간만은 나는 늘 죽음 하나를 데리고 쓰는 것처럼 고통스럽다. 언어의 심장을 움직이기 위해 나는 시를 쓸 때만은 고통의 지수가 더해지기를 원한다. (246)

언어의 심장을 움직이기 위해서, 고통 지수를 높이고자 하는 시인. 시인은 삶의 역정에서 수많은 고독과 시련을 감내해 왔고 (죽으러 간 직소포에서 살아온 이후)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단단해지고 날카로워지는 것 같다. 어느 시집에선가 시인이 하루 한 편 시 쓰기를 계획하여 꾸준히 실행에 옮겼다고 했는데 끄적끄적, 처절하지 못하고 시답지 않은 것을 두어 편 써본 나로서는 참으로 경탄스러웠다. 그런 꾸준함으로 좋은 시도 찾아드는 것이다. 어디에서 읽었더라, 천양희 시인이 바다에서 온 시인을 만났다던가, 어쩐지 그 바다 시인은 함민복 시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사라진 것은 아닌 달, 11월이 오고 있다.

2017년 10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