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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재3

이문재, 봄날 봄날 이문재 대학 본관 앞 부아앙 좌회전하던 철가방이 급브레이크를 밟는다. 저런 오토바이가 넘어질 뻔했다. 청년은 휴대전화를 꺼내더니 막 벙글기 시작한 목련꽃을 찍는다. 아예 오토바이에서 내린다. 아래에서 찰칵 옆에서 찰칵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나 찰칵찰칵 백목련 사진을 급히 배달할 데가 있을 것이다. 부아앙 철가방이 정문 쪽으로 튀어나간다. 계란탕처럼 순한 봄날 이른 저녁이다. 2017. 4. 8.
이문재, 햇볕에 드러나면 슬픈 것들 햇볕에 드러나면 슬픈 것들 이문재 햇볕에 드러나면 짜안해지는 것들이 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 쌀밥에 햇살이 닿으면 왠지 슬퍼진다 실내에 있어야 할 것들이 나와서 그렇다 트럭 실려 가는 이삿짐을 보면 그 가족사가 다 보여 민망하다 그 이삿짐에 경대라도 실려 있고, 거기에 맑은 하늘이라도 비칠라치면 세상이 죄다 언짢아 보인다 다 상스러워 보인다 20대 초반 어느 해 2월의 일기를 햇빛 속에서 읽어보라 나는 누구에게 속은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진다 나는 평생을 2월 아니면 11월에만 살았던 것 같아지는 것이다 2017. 2. 23.
이문재, 개똥벌레 개똥벌레_이문재 뭉클, 솟아나는 저 여름 산진초록, 원근은 편안하고 자욱하다너는 한낮의 가로등처럼 없는 듯있었는데, 기실 저녁도 알고 보면 동쪽에서오는 것이었는데, 그림자 자작자작 밟으며동쪽에서 오는 거였는데, 꿈뻑 어미 소처럼 가로등 불 들어오고3번 국도 휴게소에서 저물 녘 발간가로등을 마주친다, 울컥저녁은 옛일을 데불고 와서 마악생겨나는 어둠을 좌악 펼친다쉼표처럼 반딧불이 켜진다가로등에서 너는 반딧불로 몸 바꿔내 잘못에 따끔따끔 침을 놓고 있구나 원근이 사라지면 불안하다저녁은 동쪽에서 오는 것, 옛일도옛날에서 오는 게 아니었다, 이렇게 도처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가로등 불 자꾸만 밝아진다 (산책시편, 민음사) 2015. 6.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