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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준3

문태준, 팥배나무 팥배나무 -문태준 백담사 뜰 앞에 팥배나무 한 그루 서 있었네 쌀 끝보다 작아진 팥배들이 나무에 맺혀 있었네 햇살에 그을리고 바람에 씻겨 쪼글쪼글해진 열매들 제 몸으로 빚은 열매가 파리하게 말라가는 걸 지켜보았을 나무 언젠가 나를 저리 그윽한 눈빛으로 아프게 바라보던 이 있었을까 팥배나무에 어룽거리며 지나가는 서러운 얼굴이 있었네 2015. 7. 9.
문태준, 비가 오려 할 때 비가 오려 할 때 -문태준 비가 오려 할 때그녀가 손등으로 눈을 꾹 눌러 닦아 울려고 할 때바람의 살들이 청보리밭을 술렁이게 할 때소심한 공증인처럼 굴던 까만 염소가 멀리서 이끌려 돌아올 때절름발이 학수형님이 비료를 지고 열무밭으로 나갈 때먼저 온 빗방울들이 개울물 위에 둥근 우산을 펼 때 (맨발, 창비) 절름발이 학수형님이라니... 2015. 7. 7.
문태준, 짧은 낮잠 짧은 낮잠 문태준 낮잠에서 깨어나면나는 꽃을 보내고 남은 나무가 된다 혼(魂)이 이렇게 하루에도 몇번낯선 곳에 혼자 남겨질 때가 있으니 오늘도 뒷걸음 뒷걸음질치는 겁 많은 노루꿈을 꾸었다 꿈은, 멀어져가는 낮꿈은친정 왔다 돌아가는 눈물 많은 누이 같다 낮잠에서 깨어나 나는 찬물로 입을 한번 헹구고주먹을 꼭 쥐어보며 아득히 먼 넝쿨에 산다는 산꿩 우는 소리 듣는다 오후는 속이 빈 나무처럼 서 있다 (맨발, 창비) 2015. 6.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