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산이/리뷰

김애란, 『바깥은 여름』

by leitz 2018. 8. 10.

김애란, 『바깥은 여름, 문학동네, 2017.

 

 

   <입동>, <노찬성과 에반>, <건너편>, <침묵의 미래>, <풍경의 쓸모>, <가리는 손>,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등 7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지난번에 읽었던 『비행운과 마찬가지로 무거운 이야기들을 펼치고 있는데 『비행운』이 한없이 육중하게 가라앉는 느낌이라면(무거운 소설집으로는 김숨의 『국수』를 빼놓을 수 없지만) 이 소설집은 탄탄한 무게감을 갖고 보다 매끄러운 동선을 그리며 순항하는 느낌이다. 문장도 보다 정련된 느낌이다.

   소설집의 첫 부분을 묵직하게 열어젖히는 <입동>. 내가 짐작할 수 없는 '아픔'을 어쩐지 알 것만 같도록 담고 있는 소설. 복분자 병의 폭발과 그 장면 묘사가 참으로 불편하게 리얼했다.

   <노찬성과 에반>은 역시 시큼한 소설. 아이의 심리, 여름 풍경 모두 잘 담아내고 있다.

   나는 그저 여러 편 중에서 소재가 재미나네, 하며 읽은 작품이 <건너편>인데, 20대 초반 친구들은 이 작품에 많이들 흥미를 느끼는 모양이었다. 교통정보를 방송하는 여자 주인공이라니. 참신하고 익숙한 소재다. 배경이 노량진이어서일까, 젊은 친구들이 더욱 흥미롭게 공감한 이유가.

   <침묵의 미래>도 발상이 참신했지만 SF같은(공상과학소설은 아니지만), 정말 공상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서, 즉 땅과 연결되는 촉수를 찾기 어려워서 다 읽는 데 조금 애를 먹었다. 이는 대학 1, 2학년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인간 세상의 비유로 가득한 소설이어서 때로 밑줄을 치는 다음과 같은 대목도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사이가 좋은 커플은 상대가 자기보다 먼저 죽으면 어쩌나 근심하느라 얼굴이 핼쑥했다. 이 안에서 어떤 이들은 고독 때문에, 또 어떤 이들은 고독을 예상하는 고독 때문에 조금씩 미쳐갔다. (130면)

 

   <풍경의 쓸모>는 가장 재미나게 읽은 작품이다. 시간 강의를 하며 겪은 에피소드, 그리고 태국 패키지 여행, 이 둘을 교차시키면서 스며나오는 재미난(역시 가볍지는 않은) 이야기들.

 

사진 찍을 때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걸 알려준 사람이 누구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무척 평범한 사람, 좋은 일은 금방 지나가고, 그런 날은 자주 오지 않으며, 온다 해도 지나치기 십상임을 아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싶다. (149-150면)

 

아마 작가가 10년 전에 이 소설을 썼다면 이런 구절은 쓰지 못했으리라.

 

한때 내게 어머니는 모든 사람이 아버지를 싫어하게 만든 뒤 자기 혼자 사랑하려 작정한 사람처럼 보였다. (170면)

 

멋진 문장이라고 생각했다. 또는

 

'과거'가 지나가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차오르고 새어나오는 거란 생각이 들었다. (173면)

 

와 같은 문장도 마음에 들어왔다.

음주운전을 하다 사고를 내고 '나'에게 덮어씌운 곽 교수. 나쁜 인간이지만 그가 하는 말들은 그럴싸하다. 속물적이지 않은 발언을 하는 속물적 인간.

 

곽교수가 찻잔을 천천히 입으로 가져갔다.

─ 진짜 좋은 거, 정말 좋은 거. 그런데 대다수는 영영 모를 거. 그런 게 세상 어딘가에 엄연히 존재한다는 걸 생각하면 놀랍지 않아요, 이선생?

─ 그렇죠.

진짜 좋은 거, 정말로 좋은 게 뭔지도 모르면서 나는 그렇게 답했다. (174면)

 

진짜 좋은 거, 정말로 좋은 거, 내게 그게 무엇인지 한번 정리해 보아야겠다.

   <가리는 손>은 범죄에 연루된 아이 '재이'를 두고 엄마 시각에서 이야기를 펼쳐나가고 있는데 씁쓸한 이야기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아무리 바빠도 음식을 플라스틱 용기가 아닌 접시에 담으려 노력하는 건 내가 부모 세대와 반 발짝 다르게 사는 법이다. (209면)

 

얼마나 물질적으로 풍요롭게 살아야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것일까. 어쩌면 우리는 물질의 풍족이나 부족에 관계없이 내내 인간답지 못하게 사는 걸 당연시해 온 건 아닐까, 혹은 인간다운 삶에 대해 생각할 문화적 풍토를 못 가져온 건 아닐까.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는 불의의 사고로 사랑하는 남편을 잃은 여인이 스코틀랜드에서 지내는 이야기. 아이폰 시리와의 대화 내용들이 재미있었다. 북국의 어두움과 쓸쓸함과 고요함과 고독이 스며 있는 소설.

 

애든버러에서 시간은 더이상 쌀뜨물처럼 흐르지 않았다. 화살처럼 지나가지도 않았다. 그것은 창처럼 세로로 박혀 내 몸을 뚫고 지나갔다. 나는 어떤 시간이 내 안에 통째로 들어온 걸 알았다. 그리고 그걸 매일매일 구체적으로 고통스럽게 감각해야 한다는 것도. 피부 위 허물이 새살처럼 계속 돋아날 수 있다는 데 놀랐다. 그건 마치 '죽음' 위에서, 다른 건 몰라도 '죽음'만은 계속 피어날 수 있다는 말처럼 들렸다. (242면)

 

이십대 때 섬세함은 까다로움으로, 정의감은 울분으로, 우수는 의기소침함으로 변하지 않았을까 염려했는데, 주제넘은 생각이었다. 변한 건 내 쪽이었다. (249면)

 

섬세함-까다로움, 정의감-울분, 우수-의기소침함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많이 다르다. 세상살이가 켜켜이 두터워질수록 섬세함에서 까다로움으로, 정의감에서 울분으로, 우수에서 의기소침함으로 나아간다. 그냥 내버려두었다가는 시간이 자꾸 그쪽으로 끌고 간다. 그게 꼭 나쁘다고는 할 수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