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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리뷰

아쿠타카와 류노스케 단편집

by leitz 2018. 7. 17.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단편집』, 김명주 옮김, 지식을만드는지식, 2012.

 

  모두 세 편으로 되어 있다. <지옥변>, <무도회>, <갓파>가 그것이다.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일본 근대 문학의 '챔피언'이란다.

  <지옥변>은 영주에게 속해 있는 화원 요시히데의 이야기다. 당대 제일의 화원이면서도 눈으로 직접 보지 않고는 그리지 못하는 - 그 말인즉슨 직접 눈으로 본 것은 생생하게 그릴 수 있다는 말이다. 그에게는 외동딸이 있었는데 영주가 딸을 총애하여 궐내에 머물게 한다. 영주의 명에 의해 '지옥변'을 그리게 된 요시히데는, 지옥에서 고통스러워하는 온갖 것들을 대부분 그려두고 마지막 부분을 그리지 못해 고민하다 영주를 찾는다. 나머지 부분은 그릴 수 있었지만 불타는 가마 속 여인을 도무지 그리지 못하는 것이다. 혹 그런 상황을 연출해 줄 수 있는지 영주에게 부탁한다. 영주는 흔쾌히 허락하고 어느 날 가마와 불을 준비해 가마 안에 한 여인을 넣은 후 가마에 불을 지른다. 요시히데는 결국 그림을 완성하게 되는데, 가마 안에서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여인은 다름 아닌 자신의 딸. 그걸 알고도 그림을 멈추지 않는 요시히데. 그림을 완성한 요시히데는 곧 자살한다. 이러한 이야기는 영주의 어떤 시인(侍人)이 화자로 나서서 들려주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류노스케는 탐미주의니 사소설이니 20세기 초반 일본에서 유행하던 그 어떤 사조에도 속하려 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이 단편을 읽으면서 특히 딸을 태운 가마가 불타는 장면을 그리는 요시히데가 등장하는 부분에서는 어쩔 수 없이 '탐미적'이라는 말이 뇌리에 맴돌았다. 게다가 요시히데가 자신의 (대낮에도) 어두컴컴한 방에서 괴조(怪鳥)를 기른다든지, 뱀을 기르는 등의 기괴한 풍경도 탐미주의를 떠올리게 했다.

 

<무도회>는 짧은 소설이다. 별 생각 없어 보이는 젊은 부르주아 여자가 잔뜩 차려입고 무도회장에 가서 프랑스 해군 장교와 춤 한번 추고, 훗날 기차에서 만난 소설가에게 그 무도회 이야기를 들려주었더니 소설가는, 그 이야기가 바로 <국화부인>이라는 소설 이야기이며 그 소설을 쓴 사람이 해군 장교였던 피에르 로티라는 것이었다. 정황상 <국화부인>이 먼저 나오고 류노스케가 그 소설에서 착안하여 <무도회>라는 소설을 쓴 것 같다. 흐흐흐, 재미있다.

 

<갓파>는 세 작품 중 분량이 가장 길지만 결코 지루하지 않은 작품이다. 이 작품은 일종의 우언으로, 일본의 전설상의 존재 갓파의 세계를 통해 인간 세상을 통찰하는 내용이다. 인간 세상의 정신병원 23호 환자가 겪었다는 이야기. 갓파의 세상에 우연찮게 당도하여 그곳에서 다양한 갓파들과 그들의 생활 방식, 가치관, 문명에 대해 견문하고 다시 인간 세상에 돌아왔다는. 특히 갓파 세상의 철학자 마그가 쓴 『바보의 말』이란 책에 전한다는 내용이 흥미로웠다.

바보는 언제나 자기 외에는 누구도 바보라 생각한다.

가장 현명한 생활은 한 시대의 관습을 경멸하면서, 게다가 또 그 관습을 조금도 깨부수지 않도록 생활하는 것이다.

우리들의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은 우리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것뿐이다.

우리들 생활에 필요한 사상은 3000년 전에 결정된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들은 단지오래된 장작에 새로운 불을 지피고 있을 뿐일 것이다.

행복은 고통을 수반하고, 평화는 권태를 수반한다면?

물질적 욕망을 줄이는 것은 반드시 평화를 수반하지 않는다. 우리들은 평화를 얻기 위해 정신적 욕망을 줄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 <바보의 말> 中

2018.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