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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62

이정록, 뒷짐 뒷짐 -이정록 짐 꾸리던 손이작은 짐이 되어 등 뒤로 얹혔다가장 소중한 것이 자신임을이제야 알았다는 듯, 끗발 조이던오른손을 왼손으로 감싸 안았다세상을 거머쥐려 나돌던 손가락이제 등을 넘어 스스로를 껴안았다젊어서는 시린 게 가슴뿐인 줄 알았지등 뒤에 두 손을 얹자 기댈 곳 없던 등허리가아기처럼 다소곳해진다, 토닥토닥어깨 위로 억새꽃이 흩날리고 있다구멍 숭숭 뚫린 뼈마디로도아기를 잘 업을 수 있는 것은허공 한 채 업고 다니는 저 뒷짐의둥근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겠는가밀쳐놓은 빈손 위에무한 천공의 주춧돌이 가볍게 올라앉았다 2015. 6. 6.
이문재, 개똥벌레 개똥벌레_이문재 뭉클, 솟아나는 저 여름 산진초록, 원근은 편안하고 자욱하다너는 한낮의 가로등처럼 없는 듯있었는데, 기실 저녁도 알고 보면 동쪽에서오는 것이었는데, 그림자 자작자작 밟으며동쪽에서 오는 거였는데, 꿈뻑 어미 소처럼 가로등 불 들어오고3번 국도 휴게소에서 저물 녘 발간가로등을 마주친다, 울컥저녁은 옛일을 데불고 와서 마악생겨나는 어둠을 좌악 펼친다쉼표처럼 반딧불이 켜진다가로등에서 너는 반딧불로 몸 바꿔내 잘못에 따끔따끔 침을 놓고 있구나 원근이 사라지면 불안하다저녁은 동쪽에서 오는 것, 옛일도옛날에서 오는 게 아니었다, 이렇게 도처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가로등 불 자꾸만 밝아진다 (산책시편, 민음사) 2015. 6.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