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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62

복효근, 매미 매미 복효근 울음 수직으로 가파르다 수컷이라고 한다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울음뿐이었을 때 그것도 한 재산이겠다 배 속이 투명하게 드러나 보이는 적빈으로 늘 난간에 매달려 기도 외엔 속수무책인 삶을 그대에게 갈 수 있는 길이 울음밖에 없었다면 믿겠나 7년 땅속 벌레의 전생을 견디어 단 한 번 사랑을 죽음으로 치러야 하는 저 혼인비행이 처절해서 황홀하다 울고 갔다는 것이 유일한 진실이기라도 하다면 그 슬픈 유전자를 다시 땅속 깊이 묻어야 하리 그 끝 또한 수직이어서 깨끗하다 (『따뜻한 외면』) 2017. 8. 3.
함민복, 『눈물은 왜 짠가』 함민복 시인의 에세이집. 그의 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배경 설명이랄까 그런 것들도 있다. 시인은 강화도에 산다. 강화도에 살면서 어촌의 일들을 하며 살아서인지 이 책에서도 뱃사람의 일들, 갯벌의 일들에 대한 경험담이 많이 나온다. 자연스레 뱃사람의 전문용어(?)들도 많이 등장한다. 하여 종종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내용도 있다(당연한 거다, 나는 뱃일을 해본 적이 없으니). 그럼에도 대체로는 무슨 취지로 하는 이야기인지 이해하는 데는 큰 걸림돌은 되지 않는다. 라는 시는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란 시집에도 수록되어 있는 것이다. 이 시에 대해 무슨 말을 덜어내고 보탤 것인가. 지난여름이었습니다 가세가 기울어 갈 곳이 없어진 어머니를 고향 이모님 댁에 모셔다 드릴 때의 일입니다 어머니는 차 시.. 2017. 7. 26.
문정희, 혼자 가질 수 없는 것들 문정희 가장 아름다운 것은 손으로 잡을 수 없게 만드셨다 사방에 피어나는 저 나무들과 꽃들 사이 푸르게 솟아나는 웃음 같은 것 가장 소중한 것은 혼자 가질 수 없게 만드셨다 새로 건 달력 속에 숨 쉬는 처녀들 당신의 호명을 기다리는 좋은 언어들 가장 사랑스러운 것은 저절로 솟게 만드셨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 속으로 그윽이 떠오르는 별 같은 것 (『양귀비꽃 머리에 꽂고』) 2017. 7. 20.
존 윌리엄스, 『스토너』 "이 소설을 읽지 않은 사람이 부럽다. 이 소설을 읽을 수 있으니까." 어느 인터넷서점 간단 리뷰에 이와 비슷한 말이 있다고 한다. 대체 얼마나 대단한 작품이기에 이러한 평을! 이라는 생각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중반으로 갈수록 이 말이 과장은 아님을 알게 되었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스토너가 농과대학에 진학했다가 문학에 흥미를 느끼고, 슬론 교수를 통해 문학 연구자로 성장, 결국 영문학 교수가 되어 살아가고 죽어가는 이야기. 이야기는 크게 세 개의 축으로 이루어져 있다. 가정, 학교, 사랑. 다소 맹목적으로까지 보이는 이디스와의 성급한 결혼, 동료 교수 및 학생들과의 관계와 교육자로서의 삶, 캐서린과의 사랑. 소심하고 순박하기 이를 데 없는 스토너가 어떻게 처음 본 이디스에게 그리 저돌적으로 접근하는지.. 2017. 6. 3.
쿠니키다 돗보 외, 『잊지 못할 사람들』 일본 근대 작가 16인의 단편집. 첫 번째 단편인 류노스케의 은 매우 짧지만 매우 긴 여운을 남기는 작품. 아, 이렇게 짧아도 충분히 좋은 소설, 여백이 넓은 소설을 쓸 수도 있구나 싶었다. 그 밖의 기억에 남는 작품들. 모리 오가리의 , 요코미쓰 리이치의 , 이즈미 교카의 , 아리시마 다케오의 , 기쿠치 칸의 . 저는 어찌해야 할지 몰라서 그저 동생 얼굴만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이런 때에는 희한하게도 눈이 말을 합니다. 동생의 그 눈은 “어서! 어서 해!”라며 원망스럽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내 머릿속에는 마치 큰 바퀴 같은 무엇이 빙빙 도는 것 같았습니다만, 동생의 눈은 무시무시한 재촉을 계속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원망하는 듯한 그 눈빛이 점점 험악해지더니, 나중에는 철천지원수라도 노려보는 것같이 저.. 2017. 5. 19.
이문재, 봄날 봄날 이문재 대학 본관 앞 부아앙 좌회전하던 철가방이 급브레이크를 밟는다. 저런 오토바이가 넘어질 뻔했다. 청년은 휴대전화를 꺼내더니 막 벙글기 시작한 목련꽃을 찍는다. 아예 오토바이에서 내린다. 아래에서 찰칵 옆에서 찰칵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나 찰칵찰칵 백목련 사진을 급히 배달할 데가 있을 것이다. 부아앙 철가방이 정문 쪽으로 튀어나간다. 계란탕처럼 순한 봄날 이른 저녁이다. 2017. 4. 8.
사카구치 안고, 『백치, 타락론 외』 사카구치 안고의 글은 이 책 외에 도 읽어 보았습니다. 둘 다 최정아 교수가 번역한 것인데, 번역이 둘 다 좋았습니다. 안고는 다자이 오사무 등과 함께 전후 일본 문학을 대표하는 인물이죠. 개인적으로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앞부분은 조금 밋밋해서 재미가 없었는데 , , , , 는 다 읽기 아까울 만큼 재미있게 읽었어요. 내가 오늘날 사람을 보고 첫눈에 좋고 싫음과 신용, 불신용을 결정할 때 기준으로 삼는 것이 이 슬픔의 소재 여부다. 이는 지극히 위험천만한 방법이며 그 때문에 사람을 잘못 보는 경우도 심심찮으나, 어차피 모든 일에는 일장일단이 있으며 완전한 것은 없는 법. 기준이라는 것을 어디에 맞춘다 해도 기껏해야 기준에 지나지 않을 뿐이 아닌가. 나는 다만 나의 이 기준이 아버지에게서 느낀 반감이.. 2017. 4. 2.
그냥 보통의 사랑.別に普通の恋 (2013) 주연: 카네코 타카토시金子貴俊(농촌 남자), 안도세이安藤聖(도쿄에 갔다가 낙향한, 농촌 남자가 10년 넘게 짝사랑한 여자), 후쿠다 마유코福田麻由子(농촌 남자의 조카)방영일: 2013년 12월 14일방송사: HTB 내용은 다소 유치하고 별로다. 그저 홋카이도의 자연 풍광, 그리고 후쿠다 마유코가 나와서 끝까지 볼 수 있었다. 답답한 농촌 총각의 연애 방황기. 연애의 신 아저씨는 돈만 갈취하는 사기꾼도 같지만 때로는 신다운 발언을 하기도 했다. 카네코 타카토시의 연기는 좀 빛났다고 할 수 있는데 깝깝하고 순진하고 바보스러운, 연애 초짜 농촌 총각의 연기를 잘 소화해내었다. 초반엔 내가 다 민망했을 지경. 때 보았던 후쿠다 마유코를 다시 보게 되어 반가웠다. 2017. 3. 19.
이문재, 햇볕에 드러나면 슬픈 것들 햇볕에 드러나면 슬픈 것들 이문재 햇볕에 드러나면 짜안해지는 것들이 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 쌀밥에 햇살이 닿으면 왠지 슬퍼진다 실내에 있어야 할 것들이 나와서 그렇다 트럭 실려 가는 이삿짐을 보면 그 가족사가 다 보여 민망하다 그 이삿짐에 경대라도 실려 있고, 거기에 맑은 하늘이라도 비칠라치면 세상이 죄다 언짢아 보인다 다 상스러워 보인다 20대 초반 어느 해 2월의 일기를 햇빛 속에서 읽어보라 나는 누구에게 속은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진다 나는 평생을 2월 아니면 11월에만 살았던 것 같아지는 것이다 2017. 2. 23.
천양희, 배경이 되다 배경이 되다-천양희 새벽이 언제 올지 몰라 모든 문 다 열어놓는다고그가 말했을 때 꿈꿀 수 있다면 아직 살아있는 것이라고내가 말했다나에게만 중요한 게 무슨 의미냐고내가 말했을 때 어둠을 물리치려고 애쓴다고그가 말했다생각의 끝은 늘 단애라고그가 말했을 때 꽃은 나무의 상부에 피는 것이라고내가 말했다세상에 무늬가 없는 돌은 없다고내가 말했을 때 나이테 없는 나무는 없다고그가 말했다바람이 고요하면 물결도 편안하다고그가 말했을 때 산은 강을 넘지 못한다고내가 말했다더이상 할말이 없을 때우리는 서로의 배경이 되었다(너무 많은 입, 창비) 2017. 2.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