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129

Brahms - Piano Concerto No.1 - Curzon Brahms - Piano Concerto No.1, Clifford Curzon(piano), George Szell(conductor), Decca 웅장함과 부드러움과 처연함의 절묘한 조화. 데카의 음질은 보너스. 2015. 9. 14.
문태준, 팥배나무 팥배나무 -문태준 백담사 뜰 앞에 팥배나무 한 그루 서 있었네 쌀 끝보다 작아진 팥배들이 나무에 맺혀 있었네 햇살에 그을리고 바람에 씻겨 쪼글쪼글해진 열매들 제 몸으로 빚은 열매가 파리하게 말라가는 걸 지켜보았을 나무 언젠가 나를 저리 그윽한 눈빛으로 아프게 바라보던 이 있었을까 팥배나무에 어룽거리며 지나가는 서러운 얼굴이 있었네 2015. 7. 9.
문태준, 비가 오려 할 때 비가 오려 할 때 -문태준 비가 오려 할 때그녀가 손등으로 눈을 꾹 눌러 닦아 울려고 할 때바람의 살들이 청보리밭을 술렁이게 할 때소심한 공증인처럼 굴던 까만 염소가 멀리서 이끌려 돌아올 때절름발이 학수형님이 비료를 지고 열무밭으로 나갈 때먼저 온 빗방울들이 개울물 위에 둥근 우산을 펼 때 (맨발, 창비) 절름발이 학수형님이라니... 2015. 7. 7.
문태준, 짧은 낮잠 짧은 낮잠 문태준 낮잠에서 깨어나면나는 꽃을 보내고 남은 나무가 된다 혼(魂)이 이렇게 하루에도 몇번낯선 곳에 혼자 남겨질 때가 있으니 오늘도 뒷걸음 뒷걸음질치는 겁 많은 노루꿈을 꾸었다 꿈은, 멀어져가는 낮꿈은친정 왔다 돌아가는 눈물 많은 누이 같다 낮잠에서 깨어나 나는 찬물로 입을 한번 헹구고주먹을 꼭 쥐어보며 아득히 먼 넝쿨에 산다는 산꿩 우는 소리 듣는다 오후는 속이 빈 나무처럼 서 있다 (맨발, 창비) 2015. 6. 29.
에밀 파게, 단단한 독서 19세기 프랑스의 학자 에밀 파게의 독서론을 담은 책. 대체로는 공감하기 어려운 내용이었지만 간혹 이렇게 마음을 후벼파는 구절도 있다. 그거면 된 거다. 스무 살 눈물을 쏙 빼놓던 소설에 이제는 미소만 지을 뿐이라도, 그 책이 조악한 것이었고 나 자신이 스무 살 때 착각했었다고너무 서둘러 결론짓지 말자. 그저 이렇게 말하자. 그 책이 그때 그 나이의 나를 위해 쓰여졌던 것일지언정지금의 나를 위해 쓰여졌던 것은 아니었다고. -에밀 파게 2015. 6. 28.
안도현, 양철 지붕에 대하여 양철 지붕에 대하여 -안도현 양철 지붕이 그렁거린다, 라고 쓰면 그럼 바람이 불어서겠지, 라고 그저 단순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삶이란, 버선처럼 뒤집어볼수록 실밥이 많은 것 나는 수없이 양철 지붕을 두드리는 빗방울이었으나 실은, 두드렸으나 스며들지 못하고 사라진 빗소리였으나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 절실한 사랑이 나에게도 있었다 양철 지붕을 이해하려면 오래 빗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한다 맨 처음 양철 지붕을 얹을 때 날아가지 않으려고 몸에 가장 많이 못자국을 두른 양철이 그놈이 가장 많이 상처입고 가장 많이 녹슬어 그렁거린다는 것을 너는 눈치채야 한다 그러니까 사랑한다는 말은 증발하기 쉬우므로 쉽게 꺼내지 말 것 너를 위해 나도 녹슬어가고 싶다, 라든지 비 온 뒤에 햇볕 쪽으로 먼저 몸을 말리려고 뒤척이.. 2015. 6. 23.
북촌방향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 역시 여자들은 빈말에도 잘 속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솔직하지만 역시 찌질하고, 똑똑하지만 기껏 자기합리화에나 그걸 쓰고 그래서 남 얘기 같지 않았던 영화. 2009년 이전의 삼청동, 인사동이 그립기도 하다. 특히 가게 안에서 마음대로 담배 피는 모습은 참 먼 나라 풍경 같다, 벌써. 대략 열 번은 더 본 것 같은데, 볼 때마다 성준이 혼자 피아노 치는 연습을 해서 연주하는 것처럼 나도 피아노를 잘 쳐보고 싶다고 생각한다.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하지만, 5년 넘도록 아직 피아노를 치지는 않고 있다. 다음에 또 볼 때 또 피아노 치고 싶겠지. 2015. 6. 15.
Consolation Yangsuo China / Jan 2011 / GF1 2015. 6. 13.
박정대, 장마 장마 -박정대 여름 내내 방에서는 곰팡이 냄새가 났다정리되지 못한 추억의 일부에서도 여전히곰팡이 냄새는 났다 방법서설에서부터 고리끼 단편 소설선까지 책들이 익어가는 동안 기억의 다락방을 열면 거미줄 아름답게 빛났다 기억이 아름다울 수 있는 건 스스로 만든 廢鑛 속에서 빛나는 거미줄을 꿈꿀 수 있기 때문, 이라고그 여름 장마 속에서 누군가에게 나는쓴 것 같다 2015. 6.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