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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by leitz 2020. 8. 5.

감독 벤 스틸러 / 주연 벤 스틸러, 크리스튼 위그 / 2017

 

  필름 시대가 저물어가는 즈음, 잡지사 LIFE에서 사진 인화를 맡고 있는 40대의 월터 미티. 그는 특별한 일을 겪어 본 일이 없고, 딱히 어딜 여행한 적도 없으며, 같은 잡지사에 근무하는 마음에 둔 여성 셰릴에게 직접 대시를 할 만한 배짱도 없어 굳이 데이트 앱을 통해 셰릴에게 하트나 날리려 하는 소심한 인물이다. 그런데 잡지사가 온라인화되면서 구조조정이 일어나고, LIFE지 인쇄판은 마지막호 간행만 남겨두고 있다. 

  세계적인 사진작가 숀 오코넬LIFE지에 사진을 게재할 때 전적으로 월터에게만 인화를 맡긴다. 월터와 숀을 한 번도 직접 만난 적이 없었지만, 월터는 숀의 촬영 의도에 가장 근접하게 인화를 해주던 숀의 최고의 파트너였던 것. LIFE지 마지막호 표지사진으로 써주길 부탁한 숀이 지목한 것은 마지막으로 보낸 필름의 25번 사진. 그러나, 필름에는 25번만 빠져 있고, 월터는 그것을 찾기 위해 숀을 찾아 모험을 시작한다.

  월터는 처음에 그린란드에 갔다가 뜬금없이 헬리콥터를 타고 바다에도 빠지며, 배를 타고 어느새 아이슬란드에 도착한다. 숀의 뒤를 바짝 쫓지만 결국 아이슬란드에서도 숀을 만나지 못하고 회사에 돌아온 월터는 해고당한다. 월터는 어머니의 힌트로 찾아간 아프카니스탄의 히말라야에서 숀을 만나고, 그 25번 사진은 숀이 월터에게 그동안의 감사의 뜻으로 선물한 지갑 속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월터는 이미 그 지갑을 버린 뒤였다. 집 쓰레기통에 버린, 숀이 선물한 지갑을 월터의 어머니가 버리지 않고 챙겨 두었다가 월터에게 건네주고, 월터는 그 필름을 LIFE지에 넘겨준다. 결국 LIFE지 마지막호가 발간되고, 월터는 짝사랑하던 셰릴과 손을 잡으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주연을 맡은 벤 스틸러는 이 영화의 감독이기도 하다. 숀 오코넬 역을 맡은 배우는 숀 펜.

감독이자 주연 벤 스틸러

  참 재미있게 본 영화다. 우선 이 영화의 원제목은 <The Secret Life of Walter Mitty>, 월터 미티의 비밀 생활이다. 그런데 어째서 우리나라에서는 제목이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로 소개되었을까? 제목과 포스터만 보면 판타지 영화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물론 환상적인 면모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판타지 영화라고 단정짓기도 어렵다.

  안온한 생활을 해온 월터에게는 특이한 습관이 있었으니, 바로 하니 있으면서 갖은 상상을 하는 것이다. 그런 그에게 좋아하는 사람, 셰릴이 생기면서 셰릴과 관련된 상상을 시작한다. 셰릴의 호감을 사고 그녀와 잘 지내게 되는 상상. 현실에서는 직접 데이트 신청을 하지도 못해서 데이트 앱을 통해 셰릴에게 하트를 보내려다 그마저도 실패하는 인물이지만. 결국 영화가 끝나갈 즈음엔 셰릴과의 사랑이 이루어진다. 그래서 아마도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란 제목은, 월터가 상상하는 무엇이든 다 현실로 이룬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사랑이 이루어지는 상상이 현실이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영상미도 좋았고 OST도 훌륭했으며 시나리오도 흠잡을 데 없었다. 나의 베스트 장면은 다음과 같다. 월터가 드디어 아프카니스탄의 히말라야에 올라 그렇게 찾아 헤매던 숀을 만나게 되는 장면. 

  마침 숀은 눈표범을 촬영하고 있었다. 그런데 뷰파인더 안의 표범을 들여다보며 감탄하기만 할 뿐 숀은 좀체 셔터를 누르지 않는다. 이를 이상히 여긴 월터가 묻는다.

"사진은 언제 찍으실 건가요?"

숀이 이렇게 답한다.

"때로 난 사진을 찍지 않아. 아름다운 대상을 만나면 카메라로 방해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지. 그저 그 순간에 머무는 거지. 거기 그대로, 여기 이대로."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세상에 전하는 수많은 아름다운 사진 너머에, 또 사진으로 담지 않은 얼마나 많은 아름다운 것들이 있었을까. 때로는 사진으로 방해하고 싶지 않은 순간도 있는 법.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 것이다. 또 이런 대사도 기억에 남는다.

"아름다운 것들은 관심을 바라지 않아."

  또 기억에 남는 장면은 역시 마지막 장면. LIFE 지의 마지막 호가 발간되고, 월터는 그렇게 바라던 셰릴과 가까워지고, 마침 함께 길을 걷다가 가판대에 꽂혀 있는 LIFE 지의 마지막 호를 발견한다.

  그 표지사진은, 숀이 월터에게 보낸, 그러니까 월터가 그렇게 찾아 헤맨 사진이었다. 숀은 LIFE사의 건물 앞에서 우연히 필름을 들여다보는 (실제로 한 번도 본 적 없는) 월터를 담은 것이었다. 

 

정밀하게 교직된 플롯을 떠올려보면, 미처 언급하지 못한 흥미로운 요소들이 적지 않다. 간만에 완성도 높은 영화를 보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