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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62

장석남, 三월이 오고 三월이 오고 장석남 3월이 오고 또 저녁이 오네 열두 겹으로 사랑이 오네 물 이랑이 밀고 오는 것, 물 이랑이 이 江岸을 밀어서 내 앉은 자리를 밀어서 나를 제 어깨에 초록으로 앉히고는 일어서 가는데 불이 한 점이 켜지고 또 꺼지고 목련이 정수리에서부터 피어 내려오는데 처음의 서늘한 입맞춤이 조금씩 더워지고 더워지고 3월이 오고 꽃밭마다 꽃이 와 앉고 잎이 솟고 솟고 열두 겹 사랑이 오네 조금 더 작아져서 살아갈 일을 우리는 이마에 물들이네 초록 이마로 물들이네 2018. 3. 20.
김애란, 『비행운』, 문학과지성사, 2012. 책을 다 읽고 나서 제목을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을 했다. 책을 읽기 전에는 ‘비행운’이 당연히 ‘飛行雲’일 거라 생각했다. 하늘색의 표지를 보기 전에 제목만 먼저 접했을 때에도 당연히 그리 생각했다.(사실 표지 그림을 조금 자세히 살펴보는 것도 좋다) (적어도 내게는) 비행운은 낭만적인 이름이었다. 어쩐지 애인과 함께 보아야 더 의미 있고 혹은 비행운을 보면 어린 시절 함석지붕 위에 누워 보던 그림같은 풍경이 서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책을 읽는 도중에는 ‘非幸運’일 거라 생각했다. 각각의 이야기들에 어떤 불행의 그림자, 같은 것이 어려 있는 것 같아서였다. 내내 무거운 마음으로 읽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다 읽고 나서는 비행운이 ‘飛行雲’임을 인정하게 된다. ‘딴에는 혼신의 힘을 다해 중력을 극복하.. 2018. 3. 19.
추리닝의 두 사람(The Two in Tracksuits, 2008) 감독 : 나카무라 요시히로 출연 : 사카이 마사토, 단칸 릴리즈 : 2008 10년 전 영화. 믿고 보는 사카이 마사토. 35도나 되는 도쿄의 여름, 편의점에서 한 남자를 만나 외진 시골집을 찾아간다. 존 레논과 요코가 거닐기도 했다는 길을 지나, 아무도 보는 이 없는 이곳에서도 깜빡이를 잊지 않는 운전 습관, 뭔가 이... 서늘한 느낌에 꺼내 입은 추리닝. 곧 밝혀진 둘의 관계는 아버지와 아들. 도쿄의 기온이 35도로 푹푹 찐다는 일기예보를 보면서 쾌재를 부르는 부자. 이들은 일 년에 한 번, 여름철에 이곳 별장에 온다. 영화는 두세 해의 변화를 보여주는데, 별장을 중심으로 비슷한 일상이 펼쳐져 그 사이 몇 년이 지났다는 느낌은 별로 들지 않는다. 별장 안에서 일어나는 일에만 집중하고 있지만 실은 별장.. 2018. 1. 13.
[책] 가와바타 야스나리, 『설국』 어쩐지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릴 때 읽으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던 소설. 최근 읽은 책은 노벨 문학상을 받은 작품으로 유명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이었습니다. 노벨 문학상 수상작은, 대개가 실망스러운 경우가 많았습니다. 예전에 고등학생 때던가, 『도적과 개들』이라는 소설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게 노벨 문학상 수상작이라는 말을 듣고는 무지 재미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 노벨상을 받은 것이니 뭔가 깊은 속뜻이 있으려나' 하는 생각으로 참으며 읽었던 적이 있습니다. 지금으로서는 그저 '노벨상의 취향은 나와 조금 다른가보다'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서양 무용 평론가 시마무라가 설국(아마도 홋카이도)에 이따금 머물면서 그곳에서 인연을 맺은 여인들(고마코, 요코)과의 사이에서 일어나는 야릇한.. 2017. 12. 26.
천양희, 『나는 울지 않는 바람이다』, 문예중앙, 2014. 천양희 시인의 산문집. 시인의 시집을 여러 권 읽은 터라 이 산문집을 접하면서 '이건 어디서 많은 본 내용인데'하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시인 당신의 시에 얽힌 이야기들을 풀어 놓은 대목이 많아서다. 시인은 바람을 유달리 좋아하여, 그리하여 제목도 이렇다. 바람을 좋아하는 시인은, 고독과 시련을 자양분 삼아 운명처럼 시를 기다린다. 스스로를 단련하고 스스로를 (가끔) 다독이는 것이 시인의 삶을 사는 방식이고 그녀의 시에서도 그런 어떤 '비장함'이랄까 그런 것이 느껴지곤 한다. 지금도 나는 원고지 앞에 앉으면 사각형의 모서리가 절벽처럼 느껴진다. 그 순간은 말할 수 없이 절박한 순간이 된다. 쓰는 순간만은 나는 늘 죽음 하나를 데리고 쓰는 것처럼 고통스럽다. 언어의 심장을 움직이기 위해 나.. 2017. 10. 28.
황정은, 계속해보겠습니다, 창비, 2014. 무겁게 흐르는 강물 위에서가볍고 무심한 듯한 몸짓으로무거운 이야기를 낚시질하는 느낌의 소설. 라는 홍보 문구에는 동의할 수 없는 소설. 뭐 취향의 문제일 수 있으니. 내가 생각하는 좋은 소설은 잘 읽히고, 그럼에도 문장은 정제되어 있고, 인생의 무거움과 아름다움을 살풋살풋 건드리는 그런 소설이다. 이 소설은 우선 잘 읽힌다. 책을 천천히 읽는 내가 거의 하루 만에 다 읽었으니. 술술 읽힌다. 그러나 뭔가 이야기의 본질까지 다다르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자꾸 들고 피상적이라는 느낌도 지울 수 없었다. 나름 독특했던 점은, 소라-나나-나기-나나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주인공들의 시점에서 서술되면서도 시간이 거의 직선적으로 흐르도록 구성한 점이었다. 그러니까 한 주인공이 겪은 이야기를 다른 주인공의 시점에서 다시.. 2017. 10. 24.
무라카미 하루키, 『기사단장 죽이기』 등장인물 나 : 초상화로 생계를 이어가다가(나름 재능이 있어서) 산속에 머물며 제법 예술다운 예술을 하게 되는, 그러면서 신비로운 일을 겪게 되는 36세의 남자. 유즈 : 나의 아내. 어느 날 갑자기 이혼을 통보한, 건축사무소에 다니는 여자. 33세. 아마다 마사히코 : 90세가 넘어 요양원에서 혼돈의 정신 속을 헤매는 저명한 일본화가. 젊었을 적 서양화를 전공하며 오스트리아 빈에 유학할 때 반나치 운동을 하다가 연인을 잃고 일본으로 귀국. 귀국 후 일본화가로 전향하여 성공. 아마다 도모히코 : 아마다 마사히코의 아들. 나의 미대 동기. 내게 마사히코의 집에 살 것을 권유. 그림은 그만두었지만 그림 보는 안목은 누구보다 뛰어나다. 와타루 멘시키 : 사업을 하다가 지금은 내가 머무는 집에서 보이는 호화로운.. 2017. 9. 27.
사무라이 선생님(2015) 막부 말기에 할복을 당하고 타임슬립을 통해 현대로 떨어진 사무라이 타케치. 초등학생들의 보습학원에서 선생님으로 일하며 겪게 되는 이야기를 다소 우스꽝스럽게 그린 드라마. 일단 직전에 본 의 주인공이었던 니시키도 료가 이 드라마에서도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예전에 보았던 에서 처음 얼굴을 익힌 배우. 선하고 수수한 인상, 어쩐지 내게는 파리한 원빈 느낌이지만 과장되지 않은 연기는 마음에 든다. 니시키도 료 타케치와 동시대를 살았던, 그러나 타케치보다 1년 먼저 현대로 온 사카모토 료마. 료마?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인데. 료마 역을 맡은 카미키 류노스케는, 상당히 여성성이 강했다. 무게감 없는 사무라이, 를 노렸다면 성공적인 캐스팅인 것 같지만 내내 사무라이의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아 집중이 안 되기도 하.. 2017. 9. 25.
강원전자 Netmate OC-62U KVM 스위치 사진출처: 강원전자 홈페이지 맥과 윈도우를 함께 사용하고 있다 보니 모니터, 키보드, 마우스 사용에 신경 써야 할 게 많다. 모니터는 세 대를 쓰는데, 메인은 가운데에 두고 윈도우-맥 겸용, 좌측 17인치는 세로로 세워 윈도우 전용, 우측 24인치는 맥 전용으로 쓴다. 때에 따라서 메인과 좌측은 윈도우를, 메인과 우측은 맥을 쓸 수 있다. 모니터들은 HDMI 케이블 등으로 연결하여 문제 없이 쓰고 있었다. 문제는 키보드와 마우스다. 근래에 산 리얼포스 키보드를 메인으로 쓰고 있지만 맥을 쓸 때는 어쩔 수 없이 한켠에 두었던 애플 무선 키보드를 옮겨와 쓸 수밖에 없었고, 마우스 또한 두 개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최근 KVM 스위치에 대해 알게 되어 강원전자의 OC-62U라는 제품을 구입하게 되었다... 2017. 9. 10.
보후밀 흐라발, 『너무 시끄러운 고독』 너무 시끄러운 고독, 그리고 내겐 너무 난해한 책. 밀란 쿤데라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체코의 국민 작가 보후밀 흐라발의 장편소설. 장편소설이라고 해서 상당한 볼륨을 상상할 필요는 없다. 뭐 이런 걸 장편씩이나, 할 정도로 책은 얇다. 책을 읽는 즐거움, 혹은 어려움은 책의 볼륨과는 별로 상관이 없는 듯하다. 예전에 한병철의 『피로사회』는 꽤 얇았음에도 애를 먹으며 천천히 읽어야 했다.(물론 쉽지 않다고 해서 어렵기만 하다거나 나쁜 것은 아니다. 피로사회는, 어렵지만 읽은 보람이 있는 책이었다) 이 책에 대한 인터넷 서점 리뷰들의 찬사는 대단했다. 구매자도 많고 리뷰도 많고 평점도 거의 최상급이다. 그런데... 아, 사람들은 이렇게 난해한 소설을 잘도 이해하는 것인가. 나는 잘 모르겠다. 정말 얇은, 장.. 2017. 8. 25.